제주도에 많은 것 세 가지가 있다. 카페, 테마파크, 박물관.
카페가 많은 건 유명한 사실이고 테마파크는 관광지다 보니 정말 많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이번 제주도 여행 가면서 느꼈지만 박물관이 정말로 많은 것 같다. 유명한 캐릭터 박물관부터 테디베어 박물관, 자동차 박물관, 크고 작은 회사에 회장님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제주도 한켠에 지어 놓고 적당히 관리하고 있는 느낌의 박물관까지 정말 많다. (제주도에 박물관을 지으면 세금혜택이라도 있는 걸까?)
본태 박물관은 마지막 케이스로, 현대 그룹의 초대 회장으로 유명한 정주영 회장의 4남(정몽우)의 부인이신 이행자 님이 설립한 박물관이다.
제주도는 바다가 보이는 바깥쪽에 카페와 식당이 많고 안쪽은 숲인데 그 안에 듬성듬성 골프장과 테마파크, 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본태 박물관은 제주도 서남쪽, 서귀포 숲 쪽에 위치한 박물관이고 무조건 차를 타야 갈 수 있다. 거의 한 시간 내내 좌우로 나무만 주르륵 서있는 도로들을 타고 타니 본태 박물관이 보였었다.
성인 기준, 일인당 삼만 원을 받는다. 나는 렌터카 연계 할인을 받아 좀 더 싸게 표를 샀다. (제주도 여행할 때는 나우다(NOWDA), 렌터카 연계 할인, 예약 할인, 관광 팸플릿 할인 등 받을 수 있는 할인은 다 챙기는 게 좋은 것 같다.)
유명한 것에 비해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본태 박물관은 5개의 전시실과 본스타(bonstar)라는 전시실을 포함해 총 6가지 구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가 되는 전시관은 1전시관과 2전시관이다. 가장 규모가 크고 볼거리가 많아 관람시간이 가장 오래 걸린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1전시관을 보러 갔는데 전시관 맨 앞부분에 전통 수공예품이란 설명을 읽었을 때는, 각 지역의 국립 박물관처럼 되어 있을 줄 알고 좀 살짝 김이 빠졌었다. 근데 막상 들어가서 보니까 중심이 되는 주제의식이 기존의 알고 있던 박물관과는 전혀 달라서 깜짝 놀랐다. 지역 국립 박물관을 가면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전시물을 보여주고 이게 어떤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지를 설명해 주는데, 여기는 '아름다움을 찾아서'라는 주제에 맞게 정말 미(美)를 추구했던 옛날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이자 미술관이다 보니 일반적인 박물관과는 다르다는 게 확 느껴졌다.

이 상자를 보자마자 '이 상자는 상자 주제에 이렇게까지 화려할 필요가 있었나? 루이비통 트렁크백이야?'라는 생각을 했다. 루이비통 트렁크백 보다 화려한 것 같다. 이런 상자가 한 개가 아니라 한 7개 정도 전시되어 있던 걸로 기억한다. 과거 부자들도 엄청 부자고 화려하게 살았을 텐데, 미디어 사극의 부자들은 생각보다 검소하게 표현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보면서 옛날에도 부자들은 이렇게 화려한 물건을 썼겠구나 싶었다. 이 전시실 자체가 옛 시절의 사치품을 전시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심지어 난생처음으로 거기서 적색 자개농을 보게 되었다. 나는 살면서 여태 검은색 자개농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고정관념이었다는 게 적잖이 충격이었다. (이 세상의 적색 자개농을 가진 박물관이 이 한 곳 밖에 없는 게 아닐까?) 심지어 이것도 한 개가 아니라 여러 개를 소장하고 있어서 너무 놀랐다. 자개농의 디자인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던 화려함의 끝을 달리는 스타일 아니라, 모든 면을 자개로 뒤덮은 건 똑같은데 좀 더 차분한 느낌이었다.
그 외에도 다양하고 화려한 우리나라의 옛물건, 옛가구들을 볼 수 있어서 너무 재밌었다.
2전시관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전시관이라 점이 특이했다. 많지는 않았지만 백남준이나 살바도르 달리처럼 나도 알정도로 굉장히 유명한 예술가들 미술품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
3전시관부터는 굉장히 묘하다. 3~5전시관은 '이런 걸 전시해 놓는다고?' 싶은 주제들로 전시되어 있다. 3전시관은 '유교'라는 주제로 '차례'에 쓰인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고, 4전시관은 死(죽을 사)와 관련된 전시가 되어있다. 같이 간 동행들은 4전시관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수백 개의 꼭두들(고인이 이승에서 못다 한 것들에 대한 한을 풀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 인형)을 보고 바로 뒤를 돌아 나갔다. 3전시관에서 묘하게 느꼈던 의아함이 4전시관과 이어지면서 불쾌함, 찝찝함으로 바뀌었다. 3, 4전시관은 싫어하실 사람들은 굉장히 싫어하실 만한 전시관인 것 같다.
5전시관은 유일하게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5전시관은 불교와 관련된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보통 법당 안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안에는 마곡사라던가 선암사처럼 오래된 사찰에서 볼 수 있었던 불교 미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걸 전시 주제로 삼았다는 점이 신기했다. (대체 어떻게 구한 걸까?)
전시실 가운데에는 작은 방이 있다. 좁은 통로를 지나면 그 작은 방 안으로 들어 갈 수 있다. 방 안은 어두웠고, 불상 십여 개가 등을 돌린 채 좌우에 나란히 대칭을 이루며 전시되어 있었다. 불상의 앞모습은 방 벽면을 꽉 채운 통거울 통해 볼 수 있었다. 정말 굉장한 위압감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본스타(bonstar)에서는 이 박물관을 디자인한 안도 타다오의 대표 건축물들의 모형과 드로잉, 자료를 볼 수 있다.

지하로 내려가면 몇 가지 설치 예술을 볼 수 있는데 지하에서는 전파가 터지지 않으니 주의해야 한다.
볼거리가 많아 다 보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한 번쯤 가볼 만한 박물관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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